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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106 NHS에 대한 꿈과 이상
코리안위클리  2018/09/19, 06:41:33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의료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감을 느낀다. 처음엔 의료 서비스란 아픈 사람, 즉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해주는 기능만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니어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의료라는 것이 단지 병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나서 죽을 때까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늙고 병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그렇게 보면 우리들 중에서 한번도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그러면 의료 서비스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즉 아플 때 만이 아니라 건강할 때라도 자신들이 늙고 병들 때를 생각하면 누구나 불안할 것이고 자신들이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비슷한 예가 전쟁터에 가는 군인들이 자신들이 다쳤을 때 치료해 줄 수 있는 의무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편안한 마음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무상으로 제공되는 NHS 모델에 대해서 모두가 동경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자신이 늙고 병들어도 그리고 자신을 돌봐줄 가족이나 친구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즉 국가에서 자신을 돌봐줄 수 있다는 것은 어떤한 어려움에도 지키고 싶은 믿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믿음은 갖가지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할 때 제공된다는 점에서 비싼 사비를 들여서 의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진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보다 쉽게 병원을 찾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필자가 현장에서 NHS나 사립진료의 현장에서 보면 꼭 이러한 바람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떤 부모는 NHS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아예 사립진료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이는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더 하다. 거꾸로 말하면 처음엔 의사를 잘 못만나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NHS가 나왔는데 이제는 이 NHS 때문에 거꾸로 의사를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 예로 영국에서 응급실에 가 본 사람들은 의사를 만나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접수가 끝나고 간단하게 간호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바로 응급실에 있는 의사가 진료하고 필요하면 전문의에게 연락해서 바로 그날 필요한 검사나 치료가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영국은 어떠한가? 영국에서는 triage라고 하는 보건 인력 간호사가 보고 난 뒤에 응급실에 있는 의사가 보기까지는 몇 시간이나 걸린다. 본인이 답답하다고 컴플레인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급한 마음은 환자의 몫이고 환자가 당장 의학적으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응급실은 꿈쩍도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몇 시간이나 응급실에 환자를 기다리게 했다가는 아마도 당장 그 병원이 문을 닫아야 될만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즉 병원을 움직이는 주체는 소비자인 환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영국에서는 병원에 있어서 소비자는 환자라기 보다는 돈을 대는 정부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부가 여러가지 타깃을 병원에 주문하고 좀 더 환자와 소통하는 병원이 되도록 갖가지 정책을 내어 놓았다.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NHS를 포기하지 못하고 또한 한국에서까지 NHS 모델을 동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1940년대에 만들어졌던 NHS모델이 현대 의학과는 전혀 맞지가 않고 도무지 현실적으로 유지하는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진단을 여러사람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까운 시일안에 영국이 NHS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우리가 점점 오래 살면서 병자로 있어야 될 나날들이 늘어나면 점점 NHS에 대한 갈망이 심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대단히 심리적인 요소들이고 심각한 정치적인 이슈가 된다.
한 나라의 보건 서비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전 국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누구라도 병들고 아픈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그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주고 돌봐주었으면 하는 소망은 다 있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버는 것도 일종의 그런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충분한 재물이 있으면 좋은 병원에 입원해서 좋은 의료진으로부터 양질의 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안심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NHS는 어쩌면 돈이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이러한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면에서 무척이나 매력적인 모델이다. 즉 돈은 많이 벌 수 없지만 재산에 관계 없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 국민 모두에게 안심을 주는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영국 국민들은 더이상 NHS를 믿지 않고 사립보험을 가지고 있거나 웬만큼 아파도 GP에 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의료에 대해 무지해서, 아니면 영국시스템을 믿지 않아서 안 간다고 생각했지만 영국에 20년 살아본 경험으로는 웬만하면 GP를 안 만나는 쪽으로 자꾸 생각이 간다. 어쩌면 GP를 만나고 나면 그 다음 과정이 얼마만큼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장 죽을병이 걸리거나 죽을 만큼 아파야만 의사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또 초음파를 하거나 심전도를 하는 것도 꼭 의학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충분한 근거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환자가 불안해 해서 한번 해보고 싶다면 오히려 검사해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NHS에서는 환자가 비싼 검사를 받을 충분한 이유가 없으면 검사를 하진 않고 환자가 검사를 주장하면 필요없는 검사를 요구한다고 별로 고려 대상에 넣지도 않는다.
어느덧 주위를 살펴보니 한국 분들 중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한국에서 검사하고 오는 분이 있다. 우스운 것은 영국에서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쉽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정작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은 필요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갈증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부 사람이 주장하는 대로 NHS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모든 사람들이 원할 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환자만 온다면 가능할지도 몰라도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모두다 똑같은 목적만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하게 보인다. 우리가 아프면 누군가에게 찾아 가서 보이고 싶고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조금만 불편하더라도 걱정이 생기거나 병원에 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걱정을 얼마만큼 어떻게 견디는 지는 각자의 성격이나 환경에 따라 다 틀리다.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응급실에 앉아서 대기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당장 맹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기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와서 누워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본인 부담금이라는 것이 있어서 경제적인 손실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 오는 것이 어느정도 조절이 되지만 영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수요를 조절할 수 있을까. 위에서 말한 대로 응급실에서 가장 기본적인 진찰을 하는 직원이 그 다음 단계에 있는 직원에게 보이고 그리고 그 다음 전문가에게 보이고 하는 아주 이성적인 필터링 시스템이다. 그렇지만 의료는 이렇게 이성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감정적,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 사람들이 원했던 그런 의료 서비스는 오히려 한국에서 돈이 많이 있으면 가질 수 있는 서비스이다. 물론 우리 이웃들이 아프면 그 사람들도 나처럼 원하는 만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은 아니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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