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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로시는 1980년 페루지아 소속으로 경기도박과 연루되어 2년 자격정지를 받는다. 징계가 풀린 후 로시는 대표팀에 합류해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득점왕이자 대회 최우수 선수로 그의 조국 이탈리아에 우승컵을 안긴다. 한편 로시는 징계에도 불구하고 결백함을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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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스포츠를 사랑하는가? 여러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미리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다. 영화,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오락물은 대본과 프로그램이 미리 나와있으며 언제 봐도 내용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는 다르다. 스포츠는 자연스러우며 팬이 소비자로서 특정 팀이나 선수의 경기를 아무리 많이 봐도 결과는 언제나 다르다. 이런 불확실성에 우리는 열광하고 이런 치명적인 매력은 스포츠가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강력한 힘이다. 그러나 만약에 미리 경기결과가 정해져 있고 심판이 특정 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면 과연 스포츠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부패현상은 스포츠 존재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스포츠부패는 크게 2가지로 나뉜 다. 경쟁(competition)과 경영부패가 바로 그들이다. 승부조작, 금지약물복용과 불법도박은 경쟁부패에 포함되고, 횡령, 뇌물, 특혜와 스포츠단체의 부적절한 관리는 경영부패에 해당한다. 경기의 일부 혹은 전부를 미리 결정하는 승부조작(Match fixing)은 스포츠부패의 대표적인 예이며 이러한 조작은 고대 올림픽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오랜 시간 존재해 왔다. 역사에 기록된 올림픽 최초의 승부조작은 기원전 388년에 테살리아 출신 격투사 에우폴로스가 경쟁자 3명에게 뇌물을 주고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후에 올림픽 경기가 점점 커지고 도시국가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정행위는 빈번하게 벌어진다.
20세기 들어 프로스포츠가 정착됨에 따라 다양한 목적으로 승부조작이 생겨나게 된다. 가장 보편적인 목적의 승부조작은 도박과 관련해 벌어진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도박사로부터 돈을 받고 신시내티 레즈한테 고의로 져주는 ‘블랙삭스 스캔들’이 터진다. 큰 충격을 준 이 사건의 여파로 메이저리그에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커미셔너의 필요성이 부각되며 초대 커미셔너에 연방법원 판사출신의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가 임명된다. 스캔들에 연관된 화이트삭스 선수 8명은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랜디스는 나락에 떨어진 야구를 되살리기 위해 이들을 영구히 퇴출한다. 랜디스는 이후 25년 동안 커미셔너로 재직하며 부패한 야구계를 청소하여 땅에 떨어진 야구의 명예를 다시 살리는데 일조한다.
2013년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미셀 플라티니는 축구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승부조작이라 할 정도로 이러한 부정행위는 지구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에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필자 주: 아이러니하게 플라티니 자신도 거액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자격정지와 함께 UEFA회장직에서 불명예 퇴직한 축구계의 대표 비리인사이다). 축구종가 잉글랜드에서도 도박과 연관된 승부조작이 여러 번 발생한다. 최초의 사건은 1915년 4월에 벌어진 맨유와 리버풀의 경기였다. 당시 경기는 리버풀이 페널티킥을 놓친데 이어 맨유 크로스바를 강타하는 슛이 나오자 동료선수가 공개적으로 불평을 할 정도로 이상하게 흘러갔다. 결국 경기는 맨유의 2-0 승리로 마무리된다. 후에 거액의 돈이 맨유의 2-0승리에 베팅된 점이 포착되고 축구협회(FA)는 조사 끝에 양팀 통 틀어 7명의 선수가 승부조작에 관여했음을 밝혀낸다. 당시 승부조작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한 선수들만의 범행으로 밝혀져 맨유와 리버풀은 징계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조작의 결과로 맨유는 리그 18위를 차지해 19위인 첼시를 1점 차이로 따돌리고 강등권에서 탈출한다. 한편 이들 7명은 영구퇴출 결정을 받았으나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징계가 풀리고, 4명은 종전 후 재개된 리그에서 다시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잉글랜드 축구는 1964년에 다시 한번 승부조작 파문으로 10명의 선수가 감옥에 수감되고 이들은 영구 추방된다. 그러나 1971년 FA는 추방된 선수라도 7년이 경과되면 항소할 수 있는 규정을 도입한다. 이에 5명은 징계가 풀려 이 중 4명은 프로와 아마추어에서 활발하게 선수와 지도자 커리어를 이어간다. 2008년에는 5명의 선수가 승부조작을 했으나 징계는 겨우 수천 파운드의 벌금과 최대 1년 선수생활 정지에 그쳤다. 2013/14시즌에도 하위리그에서 여러 명의 전·현직 선수와 사업가가 연루된 승부조작이 발생했고 총 13게임이 조작되었다.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승부조작의 특징은 클럽보다는 전·현직 선수들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로 규모가 크지 않은 구단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FA는 현재의 도박법으로는 승부조작 근절이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며, 노동당 그림자내각의 스포츠장관인 에포드는 정부가 자신이 제안한 도박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심판이나 상대팀 선수를 매수해 좋은 성적을 거두려는 시도 역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러한 승부조작에 단골로 등장하는 국가이며, 잉글랜드와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승부조작은 구단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케이스가 많아 우려를 더하고 있다. 1926/27시즌 우승팀 토리노는 유벤투스와의 경기 당시 상대 수비수를 매수한 점이 드러나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한다. 1980년에는 세리에 A와 B에 속한 7개 클럽이 승부조작 파문을 일으켜 AC밀란과 라치오가 2부 리그로 강등되고 나머지 5개 클럽은 승점이 삭감된다. 하지만 조작에 관여한 22명의 선수와 감독은 단순 징계에 그치며 아무도 영구 퇴출되지 않았다. 2005년에는 제노아가 세리에 B에서 우승하며 A로 승격예정이었으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팀을 매수한 것이 드러나 3부 리그로 강등당한다.
2006년에는 칼치오폴리(Calciopoli)라고 불리는 심판 매수를 통한 승부조작 사건이 벌어져 유벤투스와 AC밀란 같은 전통의 명문 팀이 다시 한번 부패에 연루된다. 우승이 취소된 유벤투스는 2부 리그로 강등당하고 여러 클럽에 승점 삭감 등의 중징계가 내려지나, 어필과정을 거쳐 최종 징계는 많이 완화된다. 한때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세리에 A는 칼치오폴리 스캔들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나, 이 거대한 비리에 연루된 19명 중에 축구에서 영구 추방된 사람은 유벤투스 단장 루치아노 모지에 불과했다. 2013년에도 이탈리아 축구영웅 가투소가 승부조작 혐의로 체포되어 충격을 주었으며, 2015년에는 무려 50명이 조작혐의로 체포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승부조작은 인기 스포츠를 포함해 모든 종목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나라 혹은 단체별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는 승부조작에 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팬들의 신임을 다시 얻는데 성공했다. 그에 반해 이탈리아 축구의 승부조작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솜방망이 징계로는 이러한 뿌리 깊은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잉글랜드 케이스는 승부조작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관련 정부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프로스포츠를 대표하는 야구와 축구를 비롯해 국내에도 여러 종목에서 승부조작 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스포츠단체와 정부기관이 힘을 합쳐 이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한국스포츠는 존재 이유를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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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팀 NC다이노스는 소속 선수의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도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였다. 아울러 다이노스는 승부조작 선수를 타 구단에 넘기며 돈까지 챙겨 프로야구에 새로운 레벨의 부패를 선사했다. 야구승부조작은 미국, 일본과 대만에서도 존재했다. 대만처럼 공멸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 일본처럼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 KBO는 중대한 결정의 기로에 서있다. |
글쓴이
이 정 우 gimmeacall@msn.com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외래교수
런던대학교 (Birkbeck) 경영학 박사
셰필드대학교 스포츠 경영학 석사
런던대학교 (SOAS) 정치학 학사
SM Entertainment 해외사업부, 스포츠 포탈 사이트 근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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