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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가진 정의의 칼은 당당하게 세상의 불의를 향해 휘두르고 베어버리지만 결국 베이는 것은 주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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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은 주님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시는 것을 보고야 마음에 깨닫는 바가 있었다.
우리 입술로는 이상을 말하고 정의를 말하지만 사실은 금과 은을 구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한다. 권세도 명예도 돈이 없는 것은 진정한 권세와 명예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황금의 매력을 뿌리치기가 어렵고 황금을 섬기기가 쉬운 것이다. 하물며 황금을 넘어서 신앙을 구하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도들이 이 선을 넘었을 때 그들 안에 진정한 신앙이 이루어졌고 신앙의 실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이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황금을 구하는 걸인이었다.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게 주노니 너는 일어나 걸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자 신앙과 삶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힘은 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비록 그가 황금을 구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삶의 근본적인 장애를 없애 준 것이다.
돈을 준다면 한두 끼를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를 삶의 장애에서 질병에서 영원히 해방시켜 주는 능력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
성경이 우리에게 예로 보여주는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황금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의 신앙의 길을 방해하는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은 자기 자신의 세계관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어 자신은 옳은 길을 택했지만 결국은 실수하고 만 경우이다.
똑똑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그룹의 수입과 지출을 맡았지만 열심당원으로서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과 편견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눈에 스승 예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일리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는 마음의 경계가 분명할수록 자신의 시야가 가리워져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에 빠지면 아무리 귀한 것을 권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이 가지는 가치관과 비교를 하여 상대가 말하는 것이 귀중하게 여겨질 때만 받아들이게 되고 상대가 말하는 것이 귀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귓전으로 흘려 듣고 마는 것이다.
영적 소경이란 바로 자신의 가치관에 갇혀서 더 이상을 어떠한 권면이나 다른 말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을 따라 다니며 천국의 귀한 비유를 듣고 하나님 나라를 가는 진리를 들었으나 그의 마음이 열리지 못하고 결국 주님을 팔고 말았다.
베드로는 정의의 칼을 들고 말고의 귀를 베고 말았다.
사실상 인간적으로 볼 때 자신의 스승이 잡혀 가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제자의 도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스승이 잡혀가기 때문에 칼을 빼어 들고 싸우며 목숨을 걸고 스승을 구하려고 했는데 주님의 칭찬은 고사하고 오히려 주님의 마음을 베고 만 것이다.
이 세상에 정의의 칼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의의 칼을 가진 자는 두려움 없이 칼을 휘두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다.
그러나 그가 휘둘러 베어버린 것은 악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무고한 자들이라는 것을 아는가.
베드로가 칼로 벤 것은 말고라는 대제사장의 종이다.
그가 비록 주님을 잡으려고 칼과 망치를 들고 왔지만 그의 마음 속에 진정으로 예수를 잡으려고 증오심을 가지고 온 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종이기에 그 주인의 명령에 따라 왔을 뿐이다. 그의 마음과는 상관이 없다. 자신의 마음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세상의 환경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람들.
비록 악 앞에 선 것같이 보일지라도 그 속에 악이 있는 것이 아닌 하수아비와 같은 자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정의의 칼은 당당하게 세상의 불의를 향해 또 이런 자들을 향해 휘두르고 베어버리지만 결국 베이는 것은 주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악한 일에 앞장선 말고에게도 연민의 정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의를 사용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 분이다. 인간의 악함 속에도 하나님의 선함과 자비하심이 들어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이루시고 목적을 이루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실수와 오차는 자신에 대한 자기의 평가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가지는 평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 정도쯤은 알아주고 받아들여 주고 믿고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나를 배척한다든지 배반을 당할 경우 가지는 낭패감은 참으로 큰 것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인간이 가진 정의의 칼도 사실은 사람이 가지는 감정의 시녀일 뿐이지 진정한 진리의 시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밝히 보지 못하는 영적인 사각지대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안병기 목사 (런던 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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