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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 분열이란 완전히 미친 사람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미친 행동을 하지만 멀쩡한 정신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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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라는 말은 심심치 않게 일반인도 쓰는 용어이긴 하지만 사실 자세히 들어보면 쓰는 사람마다 거기에 대한 정의도 각각이다. 예를 들어서 ‘자아(Ego)’라는 것이 ‘자기(Self)’와 어떻게 다른가 물어보면 대개 머뭇거리거나 비슷한 거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사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프로이트 조차도 이 단어들을 혼동해서 쓰기도 했으니 일반인들이 그 정의를 모르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쨋든 이 ‘자아’란 말은 일반 사회적 관점에서는 ‘정체성’이라는 논점에서 많이 논의가 되고 있으며 자아 혼동이라는 말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정체성이 주체성과 어떻게 연결이 되고 어떻게 다르냐도 한가지 쳅터를 쓸 수 있을 만큼 학자나 학파에 따라서 여러가지 논점이 있을 수 있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보는 ‘자아’는 어떤 부분이 자신이고 어떤 부분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 자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쓴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 건강이란 것은 많은 부분 자아가 튼튼한 것 즉 어느 것이 자기 것이고 어떤 것이 자기 것이 아닌지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시자 한분이 처음에 만배를 하고 말씀 하나를 얻는데 그것이 ‘속이지 마라’ 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시자 분은 처음엔 너무 간단한 말씀에 굉장히 실망하였느나 그 말씀을 이리 저리 뜯어 보고는 그 엄중함에 자세를 고쳐 잡았다고 한다. 즉 ‘속이지 마라’라는 말은 ‘남을 속이지 마라’라는 말도 되지만 ‘너 자신을 속이지 말아라’라는 말도 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고는 이 말씀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8살 짜리 아들이 학교에서 너무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워서 병원에 데리고 오신 엄마가 있었다. 이 어머니는 십대 중반에 이 아들을 얻었는데 자신을 학대한 어머니와 다르게 키우기 위해서 무척 노력을 했는데 애가 말을 안들어서 너무 속상하다면서 하소연을 하신다. 그 어머니가 아들과 관계를 하는 것을 관찰해 보니 옆에서 앉아 있기가 불편할 정도다. 예를 들어서 애가 자세가 안좋다고 생각하셔서 ‘바로 앉아라’, ‘선생님이 물어 보시는데 대답해라’는 등등 오히려 같이 있는 내가 아동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기가 짝이 없다.
필자의 마음속으로는 ‘이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버릇 없다고 내가 생각할까봐 무척이나 불안해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발 좀 이 애가 편안하게 놀 수 있도록 놔 두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머니의 히스토리를 들어 보니까 자신이 어렸을 때 자신의 어머니와 아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물론 그 결과가 십대에 임신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신도 엄청나게 말을 안 듣고 반항한 사람인 것은 틀림 없었다. 하지만 정작 소아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는 자신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비록 어린 나이에 애를 임신하고 출산했지만 다른 어머니에 비교해서 손색없이 엄마로서의 역할과 바른 생활 자세를 심어 줄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의사를 만나고 있는 이유는 지금 바로 ‘문제’가 있는 자신의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 면담에 온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다가 성철 스님 이야기를 대비해 보면 일단 이 어머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즉 말을 안 듣고 문제가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또한 그것을 고쳐야 되는 것은 아들이 아니고 어쩌면 ‘어머니 자신’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쳐서다. 자신이 스스로의 어머니와 문제가 있고 자신의 반항행동의 결과로 충동적으로 애를 가져셔 애 한테도 미안하고 자신이 어머니로서의 역량도 그 당시에 무척 떨어져서 애 한테 무척이나 죄책감이 있다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들여다 보지 않고 눈을 감는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의 여러가지 사정들이 이 어머니로 하여금 자신에게 솔직하게 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게 하였고 그 결과로 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투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아’가 ‘분열’된 사람은 이런 순간에 자신이 속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너무나 죄책감이나 불안이 심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쪼개서 아들에게 미안한 자신의 감정에는 전혀 접근할 수도 없고 자신을 실망시키고 자신의 노력을 보답하지 않는 ‘문제 아이’만 자신의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런 분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허하다. 왜냐하면 아동을 아끼고 도와주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은 완전히 의사에게만 있다고 느껴지고 자신은 그 아동을 혹독히 몰아치고 있기 때문에 마치 분열된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잊어버린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마음상태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지에 대한 감정을 진심으로 찾아오는 것이 힘든데 왜냐하면 자신이 그 아들을 얼마나 자기 자신의 엄마처럼 무섭게 학대하고 해를 입힐지에 대해서 불안하고 그러한 파괴적인 모습에서 그 아들을 잘 지킬수 있다고 확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무엇인가 생각과 행동이 맞지를 않고 언뜻 보면 굉장히 아들에게 신경을 쓰는 엄마 같은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그 모순을 파고 들려고 하면 화를 내거나 아주 위협적으로 느낀다.
임상적으로는 학대나 방임 등의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기 어려울 정도의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에게 ‘자아’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분열’이 쓰인다고 한다. 그 당시에 자신을 때리는 엄마지만 그 엄마 옆에서 보호를 받아야만 되는 운명에 있는 어린 아동이라면 이러한 분열을 통해서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면 아마 불안해서 엄마와 같이 있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굶어죽거나 추위에 목숨을 부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분열’을 통해서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습득한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쪼개진 자아’를 합체하기가 무척이나 힘들게 되며 결과적으로 ‘속이지 말라’라는 말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진다.
어쩌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아 분열’이란 완전히 미친 사람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미친 행동을 하지만 멀쩡한 정신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느끼셨을 것이다. 즉 사회적으로 기능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끔 뉴스에서 보듯이 말이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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