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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서쪽 성벽에 손을 대고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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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오래 살면서 가끔 고국의 정서에 메마르거나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의 가락을 들으면 흥이 나고 장단 가락이 살아나 몸이 움찔움찔할 때가 있다. 우리의 몸 속 깊은 곳에 담겨있는 가락이 내 몸을 흔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덩더쿵 덩더쿵’ 하는 장구나 북소리 꽹과리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춤사위가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거문고 가락이나 피리 소리를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리들이 우리 몸에 배어있는 혼과 정신을 일깨운다. 오랜 세월 잊고 있다가도 우리의 가락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지고 흥분되어 내 안의 깊은 곳으로부터 몸을 흔드는 리듬이 살아 올라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말과 우리 음은 하나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시조를 지어 보면 언어에는 그 언어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과 리듬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영국에서도 일찍 어린이들에게 잉글리쉬 라임을 가르치려고 한다. 영어를 배워도 잉글리쉬 라임을 배운 사람과 아닌 사람은 확실히 언어적인 감각이 다르다. 언어의 밑바닥에는 그 언어가 가지는 리듬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시조라는 아주 고유한 우리의 라임이 있다. 3.4.3.4.3.5.4.3 초장 중장 종장의 짤막한 글 속에 음율이 숨어 있다. 이 전체를 3장 6구 12음절이라고 하는데 이 시조에는 반전이 살아있다. 그 이유는 이 짤막한 시조 한 수 속에 기, 승, 전, 결이 다 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인내와 끈기가 있고 반전이 있는 민족이 된 것이다. 이 시조는 양반들 사이에 여인들에게는 춤 사위로 남겨졌고 남자들에게는 가곡으로 불려졌다. 이 가곡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세계적인 민족 문화 유산으로 그 고유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서양 가곡은 알아도 한국의 가곡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의 것을 지킬 수도 진정한 한국인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연 이 땅에서 자라난 우리 어린이들도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 우리의 가락을 들으면 흥이 살아나서 몸을 흔들며 한국을 고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도 예루살렘 성에 가면 서쪽 성벽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지금도 성벽에 손을 대고 눈물을 흘리며 게다가 열심히 머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기도하고 있을까? 이방인들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이 모습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씩 모슬렘들이 기도 시간이 되면 함께 모여 양탄자를 펴놓고 절하는 모습과 드물게는 유대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둥그렇게 둘러서서 성경을 들고 머리를 흔들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머리를 흔들며 기도하는 자세를 갖는 것은 히브리어의 “‘레이쉬(ר)”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레이쉬(ר)라는 단어는 “고개를 흔들다”라는 고대의 언어에서 나왔는데(출처:버드나무 아래), 모든 히브리어 단어는 부정과 긍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레이쉬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로는 ‘죄악’을 의미하는 ‘라’라는 단어에서 나왔고 ‘라’라는 단어의 의미는 ‘흔들어서 무너지게 한다’는 의미에서 왔다. 반면에 우리의 영을 뜻하는 ‘루아크’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람이 흔드는 것 혹은 우리의 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을 종합해 볼 때 죄악된 우리의 육신에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심하게 떨리는 현상을 의미하거나 혹은 깊은 죄악의 잠에 들어있는 인간을 깨우기 위해 흔드시는 영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몸을 흔들면서 기도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나비처럼 퍼덕이며 온 몸을 흔들어 내는 하나님 앞에서의 간절함이 묻어나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것이 이들의 영적인 몸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써 모른 체하고 자신의 무너져내린 영혼을 여전히 간과하는 구태의연한 자세에서 깨어나 애통하고 가난한 자들이 절망하며 머리를 흔드는 것 같은 심정으로 하는 기도는 철저한 삶의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이제는 옛날처럼 억울하게 혹은 극심한 가난으로 몸서리쳐지는 고난을 벗어난지 오래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 내 죄악의 괴로움과 쓴 맛을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는 모습을 담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교만함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어의 문자에서 악이란 교만하여 높은 나무에 올라간 사람을 흔들어서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높은 곳에 올라간 것을 깨달았을 때에 느끼는 무서운 공포로 머리를 흔들면서 구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자의 자세가 바로 머리를 흔들면서 구하는 회개의 자세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밤에 철야 기도를 위해 산에 오르면 새벽까지 소나무 한두 뿌리를 뽑지 않으면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할만큼 그 시절의 기도에는 애절함이 묻어 있었다. 오늘날의 히브리인들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서쪽 벽을 붙잡고 통곡하며 머리를 흔들며 기도하던 선지자들과 신앙의 조상들이 기도하던 기도의 메카니즘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무너져 내리는 우리의 민족성을 되살려 낼 수 있을까?
요즈음 유행하는 많은 신조어들을 보며 무질서하게 남용되어 언어의 혼돈과 그 뿌리가 위협을 받지 않을까 염려스러움이 앞선다.
안병기 목사
런던영광교회 담임
revbkahn@gmail.com
차세대를 위해 매주 수요일 4시 유튜브 London Mission Association TV에서
런던 새소식반(Worcester Park Good News Club)을 방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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